바야흐로 결실의 계절이다. 

지난 여름을 푸르게 물들이던 분이네 텃밭에도 결실의 때가 왔다.
뭐 사실 열매는 여름 내 맺은 덕에 우리의 입이 즐거웠으나. 내 말은 진짜 결실. 즉, 종족 보존(?)을 위한 씨앗 수확의 때가 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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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네 텃밭" 만드는 날


 
지난 9월, 분이네 텃밭에 구경거리 하나가 생겼다. 

바로 오이 덩굴 사이에 살짝 숨어 있던 노각 하나가 탐스런 자태를 드러낸 것! 


오이도 보호색을 쓰는가? 결론적으로는 “쓴다”. 

오이 하나가 노각으로 곱게 늙기 까지는 보호색이 큰 작용을 했으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자료 사진 하나를 투척한다.

 


모종삽 자루와 똑 같은 색깔의 노각

 


가녀린 오이 덩굴 사이에 몸을 숨기기엔 꽤 큰 크기였으나, 텃밭에 놓여 있던 모종삽 자루와 똑 같은 색깔이라 우리 눈에 안 띠고 용케 숨어 있었던 노각! 지금 바로 따서 노각 무침을 해서 먹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왕 이렇게(?) 된 것, 조금 더 두었다가 씨앗을 보존하자는 의견을 냈다(지주의 딸이라는 이유로 분이네 텃밭 자문위원을 맡고 있음). 간사님들 대부분 도시 출신이라 “여기서 씨가 나온다고?” 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네~ 맞습니다 고객님~. 오이 씨는 노각의 뱃속에서 나옵니다. 이제부터 확인 들어가실께요~”


그로부터 2주 후 추석 연휴를 앞두고 노각을 수확했다. 조금 더 성숙하도록 두고 싶었으나 연휴 동안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보호차원에서 ㅎㅎ  노각을 집에 데려와 본격적인 씨앗 채취(?) 작업에 들어갔다.

 


노각 씨앗 채취 작업 중

 


먼저 잘 익은 노각의 배를 가른다. 짜잔~ 노각의 하얀 속 안에는 올챙이알처럼 끈끈하고 투명한 알갱이가 가득 들었고 참외씨랑 비슷하게 생긴 오이씨가 중간 중간 섞여 있다. 우선 속을 박박 긁어내 씨앗을 골라낸다. 

 
씨앗의 세계에도 허수가 있다. 속이 빈 씨앗들이 있다는 것. 콩심은데 콩 안나는 경우 농부들에게 찾아올 극심한 허탈감을 방지하기 위해 씨앗의 알이 차있는가를 꼭 확인해야 한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바로 수중부양! 

 


알이 찬 씨앗만을 골라내기 위한 비법 - 수중부양

 


 씨앗을 물에 띄우면 속이 찬 것은 가라앉고, 쭉쩡이는 물에 뜬다. 가라앉는 녀석들만 골라내 햇볕에 바짝 말리면 생명력이 가득한 씨앗 준비 완료! “사과 속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속 사과는 셀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요 녀석 하나에 얼마나 많은 오이들이 대기하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입안이 상큼해진다.


과연 노각에서 생산된 씨앗들이 오이로 잘 자랄 수 있을까? 예쁘게 익은 노각의 자태를 페이스북에 올려 자랑했더니 친구 하나가 청천벽력(?) 같은 댓글을….

 

오이 덩굴 사이에  살짝 숨어있던 노각 하나 발견! 요리해 먹을까 종자용으로 놔둘까 토론 끝에  내년 농사를 위해 리저브 하기루ㅎㅎ  @분이네 텃밭

 


댓글의 요는 “시중에 유통되는 과실/채소는 유전자 개량이 되어서 씨를 받아 심어도 나지 않는다”는 거다. 

오우….마이….. 하지만 모든 과실/채소가 다 그러진 않을꺼다…. 라고 굳게 믿으며 잘 말린 씨앗을 얌전히 종이 봉투에 넣어놓았다.   

  

분이네 텃밭은 오이 2세를 만나볼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해진다. 하지만 어쩌랴, 분이네 텃밭엔 비닐하우스가 없으니 내년 봄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오이 2세를 보게 되면 여러분들께도 그 소식을 전하리라...

 


PS 1.
씨앗을 발라낸 후 노각은 노각무침으로 변신했다. 아삭아삭하니 맛있다. 혼자만 먹어 좀 죄송.

하지만 추석 연휴를 앞둔 저녁, 이걸 누구에게 배분하겠나. 그냥 혼자 흡입하는 수 밖에. 
 

비주얼은 비루하지만 나름 맛났던 노각무침



PS 2.
씨앗을 맺은 작물이 오이 외에 또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하얀 꽃이 예쁘게 피더니 몇 주 후 씨앗을 맺은 부추! 부추 씨앗도 내년을 위해 리저브~  

 

부추는 작고 하얀 꽃이 핀다

 

생명력이 가득한 분이네 텃밭!





가회동 썬그리
 배분팀임주현 간사
배분하는 여자. 이웃의 작은 아픔에도 공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장학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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