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분이네 아티스트웨이는 전시회 관람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기만 했던 서울역사박물관을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꽤 멋진 주제의 전시들이 시민들에게 무료로 전시되고 있는데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

분이네가 이번에 관심을 가지고 관람한 전시는 바로 '석별가' 시리즈.


이번 워크샵 호스트인 박모 간사님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우리 팀과 동료의 중요성..소중한 순간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라는 슬픈 기획의도를 잠시 떠올리기도 하셨답니다.


역사적 유물이 되어버린 동대문과, 오랫동안 서울 풍경의 한 부분이었던 고가도로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시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서울'이라는 공간과 서울에 있던 콘크리트 건물이 남긴 의미를 되짚어 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 아쉽게도 이 전시는 7월에 끝이 났습니다. ☞ 다른 전시 일정 보러가기














석별가1 잘가, 동대문운동장 



서울이 고향이 아닌 저에게는 동대문운동장이 그저 고교야구 경기가 치뤄지는 곳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살면서는 철거상인들이 모여 풍물시장을 하는 곳 정도로 인식했을까요?


지금 우리가 흔히 접하는 프로야구나 축구의 전신인 스포츠 용품이나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경기에 관한 역사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동대문운동장 '광장'의 기능으로 정치적으로 뜨거웠던 곳이었다는 점입니다.


일제간 금지되었던 행사를 재개하게 되면서, 서울운동장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곳이었지만

분단된 나라, 정치적 이념으로 갈라진 시대적 배경에서 우익과 좌익이 축구장과 야구장에서 각각 삼일절 기념행사를 치루며 난장판이 되었던 적이 많다고 하네요.


청계천 복원으로 인해 이주한 노점 상인들이 동대문운동장에서 터를 잡았다가 이제는 그 운동장 마저 철거되면서 동대문운동장을 둘러싼 논란의 흔적은 마음을 씁슬하게 합니다.


경기에서 이긴 승리의 영광과 생활터를 빼앗긴 노점 상인들의 아픔이 함께 얽혀있는 역사적인 곳.

이 곳이 굳이 디자인의 메카로 변해야 했을까 궁금함이 듭니다.

동대문운동장이 운동장의 기능으로 계속 있었다면 어땠을까 말이지요. 


어쨋든.. 시간은 흘러갔고, 지금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잘못된 과거는 역사가 .. 아니 사람들이 판단해주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 동대문운동장
















 '잘 가, 동대문운동장'


                          - 임주현(간사) -


한 때는 경기장의 화려한 조명이

나를 늘 빛내주었노라


경기에 져 속상한 관람객들의 눈물이

나를 적셨고


본루를 지키기 위한 

선수들의 필사적인 땀방울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


어느덧 전광판의 불은 꺼지고

목청이 터져라 외치던 관람객들

그라운드를 신나게 달리던 선수들

커다란 둥지에 깃들어 먹고 살던 상인들도 

하나 둘 나를 떠나갔다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

박제된 듯 전시 된 마운드의 한 줌 흙

아. 사람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했던가



 







석별가2 안녕, 고가도로 

 


동대문운동장의 감회를 뒤로하고 관람하게 된 '안녕, 고가도로'


고가도로는 서울시 교통난 해소와 도심 과밀화 방지로 시작된 건설부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 13개가 건설된 이후로 1970년대 33개, 1980년대 12개, 1990년대 14개가 건설되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고가도로를

'수도의 동서혈맥', '서울의 지붕', '스피드 시대를 여는 고가도로', '조국 근대화와 직결된 쾌속의 다리' 등으로 묘사했습니다.


그야말로 스피드 시대를 준비하는 스피드 건설의 시대를 보여줍니다.


1960년대 당시 서울시장 집무실에는 각종 건설공사 준공테이프 절단용 가위들이 즐비했고,

'철문점엔 가위가 동났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는 걸 보면

그 당시 건설열풍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갑니다.

 


하지만 세월은 바뀌었고, 고가도로 건설에 열광하던 우리는 이미 변심하였습니다.


고가도로가 원래 목적한 바인 교통 흐름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보행교통에 불편하기만 하다,

미관상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고가도로는 이제 천덕꾸러기, 철거해야할 흉물이 되어버렸고, 모두 철거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듯 합니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모토로 만든 것도 사람의 일이고,

뒤돌아보지 않고 없애는 것도 사람의 일이라지만

콘크리트에 불가한 고가도로의 잘려진 기둥을 보면서 짠함이 느껴지네요.


1960년대 돌격시장이라 불리우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말하는 10년후의 '걸작 서울' 청사진에는

오류동에 사는 중앙청의 평범한 5급 공무원의 일과가 그려져 있어 당시 시대상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청의 5급 공무원에게 '평범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는게 더 놀랐습니다.)












필요에 의해 빠르게 만들어지고, 그 효용성이 없어지면 과감히 버려지는 것은

비단 동대문운동장이나 고가도로 같은 건축물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건축물 하나에도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벽돌과 흙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벽돌과 흙과 함께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겠지요. 



최호철 작가의 고가도로 그림에는 그런 사람들이 함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성장과 개발보다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꾸는 분이네 사람들의 한 줄 관람평으로 글을 마칩니다.



얼마전 노량진 고가도로와 이별하면서 중고등학교때 추억이 있는 곳인지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남은 아쉬움을 모두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안녕 고가도로!  (동대문운동장 마운드의 흙을 보니, 저도 해체공사할때 콘크리트 조각 이라도..가져올껄 하는 아쉬움은 있는걸로)



동대문운동장... 잊었던 많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왜 동대문운동장을 허물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 복잡한 심경...


서울에 살지도 않고 고가도로나 운동장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보니 마음이 아팠음. 
나도 우리팀도 재단도 언젠가는 다 사라질텐데...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동대문운동장과 고가도로들은 참 행복하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론 있을때 잘하자


이제는 누군가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동대문운동장의 흔적.. 
한때 지나던 길이었던 아현고가.. 
그 마지막 흔적들을 나눌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낯가리는 서나씨 사업국이선아
"이 무한한 우주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인간 뿐이라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이다 - Contact(1997)."  Eye contact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낯가리는 서나씨는 배분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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