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내 인생의 아침 6시입니다
《꿈꾸는다음세대》/테마+이슈 2014. 10. 13. 12:21 |스물한 살, 내 인생의 아침 6시입니다
박세혁 군
아침 5시면 여지없이 기상 알람이 울린다. 1분 1초라도 더 연장하고픈 달콤한 아침잠이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안양역에서 노량진까지 가는 첫차의 출발시각은 5시 34분. 열차 시간에 맞추려면 여유를 부릴 새가 없다. 노량진역에 도착하는 시각은 6시 20분. 마침, 스물한 살 세혁 군의 인생시계도 딱 그 시간이다.
고시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공무원 시험준비를 위해 학원으로 향한다. 수업과 자습으로 빽빽이 채워진 반나절을 노량진에서 보낸 뒤, 다시 안양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제 학교에 갈 시간. 연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14학번에 재학 중인 박세혁 군은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았을 만큼 학과공부에 열심이다.
그에게 대학생활의 낭만이란 학문, 그 자체다. 사회복지학을 선택한 이유도 그의 꿈과 가장 근접한 전공이란 생각에서였다. 세혁 군의 꿈은 교정직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정직공무원이란 직업을 통해 재소자 교화에 힘쓰고 싶다. 타인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한 때지만 방황의 시절을 거쳐 온 그에겐 매우 간절한 꿈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가정환경과 여타의 사정들로 인한 유년의 그늘 속에서도 소년은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안양유소년축구클럽 단장에게 발탁되어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오로지 공에 마음을 붙이고 멋진 축구선수를 꿈꾸며 훈련에 매진했지만, 사춘기 중학생 선수에겐 슬럼프가 찾아왔다. 잦은 부상도 하나의 원인이었지만, 열등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다른 축구부원들이 잠든 시각에 혼자 일어나 연습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이미 견고해진 슬럼프를 극복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축구를 더 이상 즐길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러, 결국 축구부를 그만뒀다.
삶의 전부였던 운동을 그만두고부터 방황이 시작됐다. 더 이상 목표의식을 찾을 수 없었기에 공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상처를 지닌 아이들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아이들을 알아봤고, 서로의 불안과 슬픔을 달래기엔 미숙했던 터라 차라리 위악을 선택했다. 말하자면 문신도 그중 하나였다.
교정직공무원을 꿈꾸고 있는 세혁 군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 강해보이기 위해서 했던 문신이 불편해진 건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가슴 설레였던 여학생과 사귀게 되면서,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팔뚝에 새긴 문신이 마음에 걸렸다. 문신을 한 청소년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지, 세혁 군은 알았다. 두려움이든 폄하든, 감정은 제각각이었겠지만 경계의 벽을 치는 것은 동일했다.
문신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평범한 또래 친구들처럼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싶었다.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엔 그 즈음, 여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 한 권이 강력한 계기가 됐다. 지금과 같은 삶은 더 이상 곤란하다는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쯤, 이제 너의 길을 찾으라고 정신을 깨우는 죽비소리랄까.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었어요. 그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인생시계인데, 80세를 기준 삼아 인생시계를 그려보면 스무살은 오전 6시란 거예요. 당시 제가 열아홉이었으니 6시도 안된 셈이었죠. 그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용기를 얻었어요. 사실, 대학에 가고 싶다 막연히 꿈꾸다가도, ‘이제 공부를 시작해봤자 기초도 없는 내가 착실히 과정을 밟아온 다른 친구들을 어떻게 좇아갈 수 있을까’ 싶어 회의가 들었어요. 한데, 인생시계를 그려보니 하나도 늦은 게 아니더라고요. 고작 열아홉, 하루 중 아침 6시도 안된 시각에 ‘이미 늦었어, 틀렸어’ 푸념하는 꼴이었죠.”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인생시계에 용기를 얻었다는 세혁 군
꿈 너머 꿈을 향해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뒤늦게나마 마음을 잡은 세혁 군을 위해 친구들은 수능영역별 학습 방법을 알려줬고, 세혁 군은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챙기며 학업에 열중했다. 처음엔 체육학과를 지망했다. 이루지 못한 축구선수의 꿈을 축구지도자로 갈음하리라 생각했던 까닭. 하지만 첫 대입 도전은 실패로 그쳤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지만 낙담하지도 않았다. ‘고작 1년을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버리자, 더 해보자’는 생각과 함께, 늘 마음의 짐이었던 문신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수능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들고 문신제거 시술을 받으러 갔다. 1회 시술에 50~60만원이 드는 까닭에, 한번 밖에 받지 못했다. 완전히 제거하려면 십 수 차례 넘게 시술을 받아야 할 터인데, 세혁 군의 사정상 가능한 금액이 아니었다. 이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름다운재단의 문신제거 프로젝트를 접하게 됐다. 마침 신청기간이기도 해서 주저 없이 신청서를 접수한 결과 지원대상자로 선정돼, 2013년부터 올해까지 문신제거 시술을 받고 있다. 이제 너댓 번만 더 받으면, 완전히 제거가 가능하다.
2년동안 지원받은 문신제거시술
사실, 문신제거 시술은 통증이 만만치 않다. 마취크림을 바르지만 레이저로 잉크를 빼는 과정이 여간 아픈 것이 아니다.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시술횟수도 십 수 차례에 이르는 터라,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세혁 군 역시 포기하고 싶을 적도 있었지만, 시술받기로 한 날짜를 어겨 본 일이 없다.
“드림일지가 큰 도움이 됐어요. 목표를 세우고 달마다 이를 위한 세부 계획을 짜서 그 옆에는 내가 세운 계획을 얼마나 수행했는지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는 일지인데, 참 열심히 작성했어요. 꿈을 위해 나아가는 내 발걸음을 수치로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 마음을 다잡는 데 유용했죠. 시술받을 때마다 동행해주신 아름다운재단의 담당 선생님께도 감사드려요. 단순히 시술 금액만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멘토링을 겸한 프로그램이라 제게는 더욱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축구지도자에서 교정직공무원으로 목표를 수정했지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달라진 적이 없다. 주중엔 공무원 시험준비와 학과 공부에 매진하느라 쉴 틈이 없지만, 토요일 하루만큼은 책을 접고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도 그 때문. 어린시절부터 어울려온 동네 형들과 결성한 봉사단체의 이름은 ‘봄’, 또는 ‘청춘’을 의미하는 ‘프리마베라’다.
박세혁 군은 지금도 책상 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둔 ‘내 인생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누군가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고 싶다. 거창하지 않은, 작은 위로여도 좋다. 흔들리며 피는 꽃들에게, “기운 내, 늦지 않았어, 이제 아침일 뿐이야” 라고 속삭이고 싶을 뿐이다.
글. 고우정 ㅣ 사진. 임다윤
※ 본 사업은 2014년을 마지막으로 사업이 종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홍홍미 사업국 배분팀 꿈꾸는다음세대 담당│정홍미 간사
재미있는 일,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싶은 작지만 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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