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도 어김없이,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휴식] 부문에 총 14팀이 선정되어 계획한 대로 혹은 좌충우돌하며 각자 나름대로의 쉼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합니다.

 

여성환경연대의 가장 오랜 활동가인 강희영 님은 14년만에 처음으로 안식월 가지고 산티아고 길을 걸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원기회복, 자신과의 대면, 자연과 사람에 대한 경이로움과 소중함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네요. 그 이야기 풀어봅니다.

 



슬로워커의 게으른 유럽 산책, 다시 희망을 만들다



재충전이 절실해

2014년은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한 지 14년이 되는 해였다. 사무처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지 4년 되는 해. 그동안 부족한 역량에 큰 역할을 맡으며 나름 최선을 다해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를 바라 보는데 낮선 이가 서 있다. 불어난 체중과 하얗게 덮여 있는 흰머리, 미소를 잃은 굳은 표정..... 낯설고 슬펐다. 2014년, 활동 안식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쉬지를 못했다. 활동을 시작할 때의 설레임과 열정은 사라지고 피곤함과 무력감으로, 부족한 수면과 시간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잠시 내려 놓고 멈추는 시간, 재충전의 시간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필요했다.

 

 

아름다운재단의 더 아름다운(?)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사무처 활동가들의 권유로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에 신청서를 내고 높은 경쟁를 뚫고 선정되는 행운을 얻었다. 드디어 나의 버킷 리스트에서 10년 동안 꿈만 꾸고 있던 ‘산티아고 순례길’과 20년 넘게 묵혀 두고 있었던 유럽 골목길 산책을 바깥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주위의 응원을 받으며(사실 부러움을 가득 받으며...^^) 떠났던 길, 사실 재충전 지원사업이 없었다면, 3개월의 안식월도, 쉼의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눈물, 콧물 흘리며

출발 당일, 사무처 카톡방에 링크된 곳을 꼭 확인하고 떠나라는 글이 계속 올라 온다. '뭐지? 선생님들께 잘 다녀오겠노라는 인사드리기도 바쁜데......' 기내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유투브로 연결된 주소를 클릭해 보았다. 헉! 나를 응원하기 위해 노래를 개사해 연주까지 직접 하여 깜짝 공연을 하고 있는 사무처 활동가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눈물이 와락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진다. 감격의 눈물이 하염없이 내려 왔다. 그렇게 뜨거운 가슴을 안고 나의 길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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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메고 나홀로

환승하는 모스크바 공항에서는 꽃할배의 여파인지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계신 한국 어르신들이 가득하고, 혼자 배낭을 메고 앉아 있는 내가 신기하신지 나를 보며 그들끼리 나에 대한 얘기를 나누신다. 마드리드를 향한 긴 비행은 못 다한 여행 정보를 보충하기에 충분하였고, 한밤중에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이 약간 불길하였다.

 

 

달라도 너무 다른

2014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800km 전 일정을 걸었던 이들에게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그들이 산티아고 길 위에 있었던 한 달동안 비를 구경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틀 정도 살짝 내렸으니, 판초우의는 짐이 될 것이고 굳이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 러! 나! 그들이 걸었던 계절과 내가 걸은 계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즉 그들의 일기와 나의 일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들도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ㅠ.ㅠ 우천에 무방비했던 나는 폭우와 함께, 그것도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 붓는 폭우 속에, 연일 뉴스에서 어느 도로가 침수되고 어느 가옥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그 길 위에서 매일 아주 특별한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짐’을 최소화하라고 강조, 또 강조하였다. 나는 다음 이에게 꼭 방수되는 신발을 신으라고 얘기할 것이다.

 

 

부엔 까미노 Good Travel 
까미노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이고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라는 뜻인데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의 길을 줄여서 '까미노(Santiago de Camino)'라고 부른다. 순례자들은 서로 '부엔 까미노(Good Travel)'라고 인사를 나눈다. 길 위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말, 어떤 날은 유일하게 한 말이 이 '부엔 까미노'이다. 프랑스길 800km 전 일정을 순례하고 싶었으나, 너무 늦게 출발한 탓에 중간에서 걷기를 시작하였다. 착한여행에서 추천한 산티아고 도보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갈리시아 지방의 사리아에서 출발하여 6일동안 117.3km를 혼자 걸었다.

 

 

2014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미리 본 산티아고, 그 길은 어디에? 

먼저 걸었던 이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틈틈이 정보를 모았다. 열 권에 가까운 산티아고 에세이와 가이드북도 읽었다. 꼭 들러야지, 꼭 봐야지 찜한 곳들을 열심히 메모해 두기도 했다. 그들처럼 나도 길 위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보고, 물통에 식수대의 물을 담아야지 하며 야무진 꿈도 꾸었다. 그야 말로 꿈이었다. 현실은?

질퍽이는 길 위를 속옷까지 젖은 상태에서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양말을 신고 발이 퉁퉁 붓도록 앞이 보이지 않은 그 길을 죽을 힘을 다해 매일 걷는 것이었다.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책 속에서 본, 줄 지어 가는 순례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한 시간에 한명 만날까 말까, 아니 오후 내내 단 한명의 순례자도 보지 못한 날도 있었다. 순례자는 고사하고 서너시간 동안 마을도,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도 안 가고 퉁퉁 불어 터진 발을 절뚝거리며 언제 어두워질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정말 초인적 힘을 다해 걸었다. 아니 넋을 놓고 달렸다. 이 먼 곳까지 적지 않은 돈을 써 가며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였다가 제발 살려만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가. 정신이 아픈 사람처럼 그렇게 그 길 위에 나는 있었다. 몇 시간 만에 만난 작은 시골 가게에서 나를 걱정해 주던 마을 사람들, 드디어 발견한 마을, 얼마나 감사하고 또 고마운지. 도착해서 부운 발과 손을 보며 다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민낯과의 대면

혼자 순례하는 동양인 여자에 대한 호기심과 멸시, 환대를 그 길 위의 사람들에게서 보았다. 나는 그렇게 동양인 여자로 존재하였다. 혼자 걸으며, 극한 상황을 겪으며, 매일 20여 킬로미터를 걸으며 나는 나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그 동안 ‘~아닌 척’, ‘~인 척’ 하며 살았던 자신을. 온전히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고 돌보는 것도 참 낯선 일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놓았는가, 버렸는가'라고. 나는 대답한다. 그 길에서 나는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혼자 걷고,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또 걷고...... 나는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일상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소중함을, 함께 꿈을 꾸며 같은 비전을 품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소중함을.

 

 

2014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축복 받은 나라, 축복 받은 순례자

2014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스페인은 참 복을 많이 받은 나라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풍유할 수 있는 축복 받은 나라.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은 마치 선물을 받은 날처럼 햇살이 대지를 가득 채웠다. 몇 발자국 걷다가 감탄하고, 다시 걷다가 감사해 하고, 탐복해 하고. 그렇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온 몸으로 느꼈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길 위에 선 순례자의 티를 내며 첫날부터 절뚝거렸던 나는 그저 절뚝거리지 않고 평범하게 걸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작은 것이지만 간절한 소망을 품기도 했다. 오늘은 어디까지 걸을까, 목적지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점심은 어디서 뭘 먹고, 어느 숙소에서 잠을 청할까.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질문들을 던지며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했던 시간들.

 

 

득도의 길?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다시 그 길을 가고 싶냐고. 당연하지! 지금이라도 당장 다시 그 길에 서 있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자들 중에는 순례 후 인생의 대전환을 가져 온 이들이 많다.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가 그럴 것이고, 제주올레길을 기획한 서명숙 선생이 그럴 것이고, 도보여행가 김난희 선생 등이 그럴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면 엄청난 득도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럴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도인이 되지 않더라도, 그 길을 걸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 예상치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자신감과 그것을 헤쳐나갈 용기는 분명 그 길을 알지 못한 이들에 비해 훨씬 더 크고 단단할 것이다.

 

 

2014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또 다른 길을 꿈꾸며....

그렇게 산티아고 길이 주인공이었던 나의 이번 여행은 포르투갈의 재발견, 가우디에 대한 짝사랑, 1일 5식을 하면서 삶의 여유를 누리며, 삶을 즐기며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 함께 하는 이들과의 깊은 연대와 교감을 나누는 스페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쫒아가는 길로 이어졌고,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가 찾아야 할 대안적 삶과 대안사회에 대한 작은 힌트들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예술과 미술, 특히 이야기가 담긴 미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기도 하고 유럽에서 동양인 여자로서 산다는 것, 열정과 열심을 다해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가며 살아가는 멋진 여성들을 볼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아... 다시 또 떠나고 싶다.

 

글/ 사진 :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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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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