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정표’ 일상에서 발견하기

- <길 위에서 길을 찾다> 프로젝트의 원칙 첫 번째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보람입니다. 

첫 번째 글을 쓴 이후로 한 달 반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세월호 참사가 있었는데요. 심해로 가라앉아 가는 커다란 배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 해서 ‘가만히 있었던’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길 위에서 길을 찾다> (이하, 길찾기)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해 애도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못다 핀 채로 밟혀버린 거리의 들꽃처럼 강제로 자기 꿈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던 단원고 학생들을 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길찾기’가 더욱 절실하고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대학에 갈 때까지, 취업 준비를 할 때까지 길찾기를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도와주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상 나누기


길찾기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늘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일상 나누기'. 

일주일 혹은 이 주에 한 번씩 만나기 때문에 그동안 있었던 일이나 조금은 특별한 변화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고 듣는 시간이지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입을 떼는 것도 무척 어려워합니다. “자, 여러분 그동안 뭐하고 지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고민을 하다가 “뭐 특별한 건 없는데요.”라며 시큰둥해 하거나 지난주와 똑같다고 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학교 와서 공부하고, 학교 끝나면 집 가고, 집에 왔다가 바로 학원에 가거나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친구들과 PC방에 가거나 축구 혹은 농구를 합니다. PC방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게임을 즐기고요, 가끔은 치킨이나 냉면, 떡볶이 같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잘 못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기 일상이 너무나 평범하고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생이든 어른이든, 우리의 일상은 날마다 다르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패턴화된 일상을 지루하다고 느끼며 주목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자극과 특별한 경험을 찾으며, 일상을 박차고 ‘떠나라, 가슴 뛰는 세계로!’같은 광고 문구에 쉽게 유혹 당하곤 하죠. 물론, 일상과 다른 특별한 사건을 통해 자기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상과 자기 자신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있는 걸까요? 

하지만,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상에 주목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걸까요?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기


J고등학교에서 어느 날,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질문이 적힌 카드에 각자 대답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답에 대한 반응 카드를 주는 게임입니다.


한 친구가 ‘요즘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기분)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행복’이라고 대답했어요. “뭐 특별하게 하는 것도 없고 똑같은 일과를 보내지만, 매일 매일이 다르고 새롭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대해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은 그 친구가 처음이었어요. 평소 일상 나누기 시간에도 시시콜콜하게 자기가 무얼 하며 지내는 지를 이야기하던 그 친구는 자기의 요즘 일상이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 친구의 대답에 대해 다른 친구들은 다들 못 믿겠다는 듯 놀라며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모두들 그 친구를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중 한 친구는 갑자기 충격 받은 얼굴로 ‘행복’이라는 말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며 그 단어를 잊고 살았다고 탄식 했습니다. “야, 하루만 한 번 인생 바꿔 살아보고 싶다. 너 나랑 하루만 바꿀래?”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자기 일상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가 ‘요즘 자기 삶에 가장 큰 에너지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카드를 받았습니다. 

이 질문에 꼭 답하고 싶다면서, “요즘 저는 여자 친구가 가장 힘이 돼요. 힘든 것 털어놓으면 위로해주고 내 편이 되 줘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에 대해 부러워하기도 하고 장난스럽게 “오~ 여자 친구~”라고 하며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길잡이가 “여자 친구에게 의지를 많이 하고 있구나. 요새 힘든 일 있니?”라고 물어보니 “엄마가 저녁에 일하러 가서 학교 갔다 집에 가면 집에 강아지랑 단둘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들어오고요. 그래서 좀 외로워요.”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구나. (그런 여자 친구가 있어서) 정말 좋겠다. 나도 지금 너 나이 때 남자친구 사귄 적 있었는데 너처럼 많이 의지하거나 큰 힘이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라고 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는 건 아니거든.”라고 덧붙이며 옆에서 응원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그런 가까운 존재가 드물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라져 버린 ‘나’의 일상 찾기


특별히 말해줄 것도 없을 것 같던 나의 일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사라져 버린 ‘나’의 모습을 되찾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하고 자기의 일상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지요. 흔히 진로를 찾기 위해서 심리 혹은 직업 적성 검사를 하고,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대표적인 몇 가지 직업들에 맞춰서 자기가 갈 진로의 방향을 정해버립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상에서 자기 진로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어려워집니다. 남들이 다 인정하고 거창하게 좋아하거나 아주 오랫동안 열심히 해온 것만 자기 진로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진로를 일상에서 찾는데 방해를 하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고 늘 화려한 모험과 격정적인 시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로는 자기가 서 있는 곳,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요.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 자주 만나는 사람, 그리고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작은 조각들이 모여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만든 것이니까요. 일상을 찬찬이 돌이켜보고 정리해보는 일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 지를 고민하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됩니다.



일상 속 나를 발견하기


아이들 모두가 자신만의 이정표를 가슴에 달 수 있도록, 길찾기 프로젝트는 아이들 스스로가 자기 일상을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길찾기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이 머뭇거리며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일에도 길잡이 교사는 그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 조금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어떤 한 친구가 “이번 달에는 친구 생일, 아버지 생신, 스승의 날 행사 같은 게 많아서 돈 쓸 일이 많았어요.”라고 한 것에 대해서 “그 사람들에게 모두 선물을 사주었니?”, “주변에 사람들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하니?”등의 질문을 다시 하면서 정이 많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주려는 자기 모습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한 이야기들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으면 연결 지으면서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K고등학교에서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인 ‘League of Legend(줄여서 LOL, 롤)를 모두들 열심히 한다고 했습니다. 한 친구는 한 주를 돌아보며 “저는 승급전(높은 계급으로 올라가는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판)에서 지는 바람에 일주일 내내 기분이 안 좋았어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친구도 “저도 롤 했는데 저는 이겨서 기분이 좋았어요.”라고 하기에 잘하냐고 물어보니 “아니요, 저는 별로 못해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롤을) 많이 하지는 않는구나?”하니, “아니요. 좋아해요. 재밌어서 계속 하는데도 아직 브론즈(하위권 계급)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못해도 계속 하는구나?”라고 다시 질문을 던지니 “네. 재밌어서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여기서 길잡이는 같은 게임을 해도 한 명은 지면 너무 아쉬워서 한동안 기분이 다운되고, 반면 다른 한 명은 그 정도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저는 “재훈(가명)이는 게임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잘하기도 하는데, 주호(가명)는 못하는데도 신경 안 쓰고 계속 잘 하네.”라는 식으로 피드백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도 같은 게임을 해도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나 하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길찾기 프로젝트, 궁극의 목표


일 년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아이들과 길잡이 교사들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길찾기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와 바람은, 길잡이 교사들이 없어도 스스로 자기를 정의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타인을 바라보듯이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죠. 남들이 대신 잘하는 것을 찾아주고 “야~이게 너랑 잘 맞네!”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든지 자기의 생각으로 진로를 만들어가고 어려움이 오더라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홀로 우뚝 서서 자기의 ‘길’을 찾아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며 함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아이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해 주세요. 

다시 만날 때 까지 안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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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람 청소년진로탐색지원사업 콘텐츠 담당김보람 공간민들레 자원활동가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어서 늘 그 언저리에 있는, 작지만 강한 소녀(?)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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