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공익단체 활동가들이 숨가쁜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서, 조바심 내지않는 여유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또한 신선한 열정을 가득 채워 돌아와 공익의 길에 다시 서줄 것을 기대하며, 공익단체 활동가들의 재충전을 '비움과채움'이란 이름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0년 겨울 아름다운재단은 11개팀 총 19명의 활동가분들에게 비움과채움을 약속하였고,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여행은 현재까지도 계속 진행중에 있습니다.

내 아이 마음껏 책읽으며 놀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자원활동가에서 이제는 도서관 활동가로 변모한 알
짬마을어린이도서관 강영희 선생님, 짝꿍마을 어린이도서관 박지현 선생님, 마루마을 어린이도서관 권의경 선생님.

면접심사장에서 남편과 자녀를 남겨두고 오롯이 나를 위해 떠나는 생애 첫 여행이라며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발그레 상기되던 소녀같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도서관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을 해오던 3명의 활동가가 진정한 공동체 운동을 찾고자 계획한 인도.
하지만 그곳이 인도이건 아니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자신과 자신의 활동을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 중에
이미 마음의 스승을 만났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되뇌이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비움과채움을 결정해주고, 과감히 떠나주셨던, 그리고 그 길에 다시 돌아온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떠나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을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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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 강영희, 짝꿍마을어린이도서관 박지현, 마루마을어린이도서관 권의경님이 작성해주신 에세이 입니다.]


1. 질문을 갖고  비행기를 타다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는 본능으로 마을도서관을 만들고 이웃을 만났다.
그리고 그 이후 나에게 참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풀뿌리운동가’ ‘주민운동가’ ‘관장님’...

그리고 참 많은 질문들이 들어왔다.
‘풀뿌리운동이 과연 대안인가?’
‘결국 너희들 좋자고 하는 일아닌가?’
‘도대체 지금까지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마을도서관을 계속 만드는 일은 결국 신자유주의에 복무하는 일이 아닌가?’
‘엄마들은 변화할 수 있는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눈치 채는 동시에 수많은 학습과 성찰이 요구되어 온 5년이었다.
책은 물론이고, 수많은 대안학교, 성미산, 반송, 홍성 등 알만한 공동체마을, 다양한 활동가대회를을 찾아다니며 묻고 물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다

“푹 익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공동체는 가능한가?
공동체 운동은 변화를 가져올까? 공동체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이 질문의 답을 듣고 싶은 곳이 왜 하필 인도였을까?

인도는 삶의 질문들을 짧고 굵게 대답할 것 같았다.
게다가 여러 형태의 공동체가 있고, 무엇보다 해외여행으로 인도만큼 경비가 싼 곳은 드물다.
그리고 내 속에 알고 있는 대답을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었던것 같다.
이 많은 질문들을 안고 난 인도로 향했다.
마을어린이도서관의 역할과 비젼을 정리하고 오겠다는 거창한 제안서를 써 놓고...


2. 이해도 하지 마라 그것도 폭력이다-델리



첫 인도, 델리!!!
‘아~~ 이런걸 보려고 내가 인도에 오고 싶었나’
델리에서 만난 첫 인도는 나의 허영심에 한치의 용서도 없이 매질을 했다.
나는 이미 인도를 성자의 나라, 모든 근심을 날려버리는 순수한 나라로 알고 있었고
그걸 인도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나보다.  그런 나에게 델리의 거리는 돌아버릴 만큼 시끄럽고, 더럽고, 무서웠다.
단 1분도 쉬지않고 눌러대는 뤽샹의 클락션 소리, 짧은 외국어로 마구 질러대는 호객행위하는 소리, 개짖는소리,
검열대의 경보음,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노래.

인도를 설명하는 데는 사진기가 아니라 녹음기가 필요했다.
게다가 사람이 지나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와 뤽샤, 차가 오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건너가는 사람들,
표준가격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못찾을 제멋대로 상품가격, 한 번도 지켜지지 않는 기차시간,
제멋대로 쉬어가는 교통수단, 어딜가나 몸수색을 거쳐야 하는 인도는
성찰과 성자의 나라가 아니라 무식하고, 혼란하고 무서운 나라였다.

난 뭘 믿고 인도를 그렇게 좋아했나?
도대체 그 많은 돈은 어디다 쓰고 신호등 하나 못만들어내나.
그 많은 갠지즈강 물을 두고 도대체 왜 이렇게 더럽게 하고 사나?
내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이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해하기는 커녕 무엇인가 알려주고 깨우쳐주고 가고 싶었다.
막연한 환상을 가졌던 어리석음은 분노와 억울함이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인도사람들은 누구하나 불편하다 하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 뤽샤가 급정거를 해도 역정 내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지나가는 행인 때문에 급정거를 해야 했는데 뤽샤꾼도 아무말 하지 않는다. 
한국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끄럽게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과 이 물건 저 물건 모든 것을 만져보고 입어보고
그냥 가는 손님 사이에도 실랑이가 없다.
개가 내 집 대문 앞에 와서 놀던 자던 나를 해치지 않으면 그 또한 아무말도 없다.

‘아뿔싸!! 나는 나의 잣대로 인도를 이해하려하고 있구나’

‘내가 마을에서도 이러고 있었구나’

나는 MBTI, 애니어그램, 집단상담, 비폭력대화 등 여러 가지 도구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훈련받았고
때로 돗자리를 펴라고 할 만큼 상대를 잘 이해한다.
정부의 지원없이, 든든한 모단체 없이, 겨우 빈곤층을 면하고 사는 마을에서 6년동안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줌마들의 왜곡된 갈등들을 잘 중재하면서 살아온 내공도 만만치 않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 세월 속에 공감이 가는 갈등보다 이해하기 힘든 갈등들이 훨씬 많았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은 더 많았다.
이런 일들을 만날 때 마다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들과 함께 과연 공동체는 가능한가?’ 질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적 환경과 역사적 환경까지 이해해가며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나의 고단함이 여기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걸 인도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인도를 이해하지 말자. 그것도 폭력이다.”

그 후 인도여행은 나에게 신기루 같았다.
인생을 즐기는 인도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난해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받아들이는 묘한 낙천성이 내 눈에 보였다.

손을 내밀고 구걸하지만 비굴하지는 않고, 시끄럽게 호객행위를 하지만 꼭 사야한다는 앙심을 갖지않고,
손님에게 1g도 틀리지않게 과일을 팔면서 걸인에게 알알이포도를 한 줌 쥐어줄 줄 아는 사람들.
지금도 그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걸리지 않는 웃음소리와 함께...


3. 공동체는 살아가는 것이지 여행이 아니다-꼴까따

이번 여정은 애초 계획대로 진행 되지 않았다.
우리는 공동체마을 연수를 생각했지만 결국 인도 여행이 되었다.
인도라는 곳이 워낙 한국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 그 나라 자체로 질문과 도전을 많이 받는 곳이었다.
그나마 그것이 우리에게 위안이었다.
그 와중에 꼴까따의 데레사하우스 방문은 계획 했던 유일한 방문지였다. 그러니 그곳에 임하는 각오도 남달랐다.
당차게 생활하고 많은 것을 배워서 여러사람에게 알려주리라 맘 먹었다.
그런데 그것도 여의치않았다.
꼼꼼하게 조사하지 못한 정보로 인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였다.

                                                         [사진설명  : 슈슈바반 옥상에서 우리들]

한층 무거워진 마음을 갖고 유아들을 돌보는 슈슈바반으로 향했다.
슈슈바반에는 우리나라 유치원 같은 곳과 장애가 있어서 침대에서 생활하는 곳으로 나뉘어있었는데
유치원에 볼거리가 돌아서 우리는 장애영유아가 있는 곳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자원봉사라니.......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자원봉사를 하는걸까?
아이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수녀님과 봉사자들만으로도 그들이 필요한 손길은 충분했다.
오히려 데레사 하우스를 보러 온 나에게 아이들이 필요한 것이었다.
수없이 많은 자원봉사자들...
그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은 침대에 누워 눈도 못뜨면서 꾸역꾸역 들어오는 음식물을 받아먹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끊임없이 조각나고 있는 '사회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에게 도서관도 만들고, 마을가게도 만들고, 학교도 만들면서 함께 살아가자고 얘기해왔다.
그런데 문득 문득 ,
‘나는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회의가 들었다.
저렇게 이기적으로 옴싹달싹도 하지 않는데, 저 좋으라고 공부하고, 프로그램 만들고 이러는데,
도대체 변하는 것 같아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계속 봉사해야 되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심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일들이 내게 필요한 일이라는걸 바라보지 못한다.
공동체운동은 삶의 과정인데 난 데레사하우스를 찾는 여행자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슈슈바반에서 느낀 복잡함을 품고, 꼴까따 시내를 걸었다.
규모있는 도시답게 사방에서 오는 도로가 교차하는 그곳에 공원이 있다.
그리고 그 공원 한가운데에 레닌 동상이 서있었다.
신기하다. 레닌동상을 처음 봤다.
어쩌면 어디서도 못 볼 지도 모르겠다.
레닌동상이 국가보안법은  커녕 도시의 한가운데 서 있을수도 있는 것있을 새삼 깨닫게 된다.
‘레닌’과 ‘카스트제도’
같이 있을 수 없는 것들이 이 곳에 버젓이 있다.
얼마나 많은 투쟁과 혼란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분노와 처절함이 있었을까?
인도는 굳이 그걸 숨기려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활과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4. 간섭, 공동체의 시작-바라나시

아쉬람을 통해 공동체 문화를 경험하고 싶었던 애초의 계획은 실패였다.
그러나 공동체성을 찾기 위한 여행으로 인도는 행운이었다.
인도인의 삶 속에서 아직 깊게 남아있는 공동체성을 발견하기는 어렵지않았다.

눈만 뜨면 씻고 닦는 인도사람들의 생활을 엮어내는 공동수도,
누가 가게주인인줄 알수 없을 만큼 훈수를 두고 함께 장사하는 이웃,
거리의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외국인의 카메라를 엄격하게 거절하는 행인 등

인도사람들은 서로를 돌보고 있었다.

물론 시스템이 낙후하고 개발이 덜 되어 봉건적인 공동체성이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쉽게 보이는 걸인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나라 걸인들에 대한 동정심과 염려가 더 생겨난다면
그건 분명 돌봄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돌봄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여행자들의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바라나시에서 어렴풋이 그 답을 찾아 본다.

바라나시!!
나에겐 그곳이 성지였다.
10여일간의 인도여행 이후 도착한 도시여서일까?
강가강에 떠내려가는 시체도, 장작 더미에 올려진 시체도, 발도 담그기 힘든 강가 물을 마시는 인도사람들도,
좁은 골목에 바듯이 서로 지나가야하는 소와의 만남도, 다름을 알게 될 때의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 이글을 쓰는 이순간도 가슴이 떨려온다.
가슴속에서 살아나는 바라나시의 냄새, 사람들 소리, 새벽의 물안개가 나를 흥분하게 한다.
바라나시는 이것으로 충분히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인도 여행내내 겪었던 일들이 바라나시에서 각인이 되었다.

학습하지 않고 온 여행자가 살아가는 법은 묻고 또 묻는 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길이라 해도 지도로 확인하고 인도인에게 물었다.
그럴때 마다 일어나는 풍경이 있다.
3분이 되지않아 원을 형성할 만큼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여행자가 물어 본 질문에 대해 서로 해결점을 찾아가기 위해 다양한 정보들을 내놓는다.
그 모습은 내가 잘난척 하기 위해 하는 참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도 내문제로 받아들이는, 물결파동이 서로 간섭을 일으키는 것 같은 자연스런 몸짓이었다.

‘간섭’은 공동체의 시작이다.
바라나시에서는 이런 간섭을 다양하게 관찰 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 악세사리를 파는 인도처녀는 알고보니 손님이다. 악세사리가 맘에 들어 고르고 있는데
너무 이뻐 지나가는 나에게 어울릴것 같아 권해본단다.
고맙다고 인사할 때도, 미안하다고 인사할 때도 ‘no problem'으로 대답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해 들어가는 것은 아무문제가 없는 자연스런 형상일 뿐이다.
인도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경계가 거의 없었는데, 바라나시 사람들은 특히 그랬다.
유명한 관광지라서 훈련되어 있는 것이라는 의심도 해본다.


[사진설명 : 인도의 공동수도]                                                [사진설명  : 길을 묻자 모여든 사람들]


5. 시스템이 아닌 삶으로 경험을 공유해 가는 인도

신자유주의 아래 왜곡된 구조를 얘기하지 않아도, 양극화의 심각성을 수치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 마을사람들은 안다.
구조적 모순의 한쪽 끝에 있는 삶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으로 정리하지 못해 다른 이를 설득시킬 재간이 없고 불안함에 의연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걸 분명히 알고 있다.
마을도서관으로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 그 증거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우리가 어떻게 도시 속에 마을공동체를 이루어낼지 누구도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마을도서관에 모여 오늘을 얘기한다.
내일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오늘의 문제를 얘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신나고 그래서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에 대한 답도 안다.
내가 건강하게 변화해 가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임을 안다.

인도는 그 답을 시스템이 아닌 삶으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서로의 삶에 간섭하면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경험을 공유해 가고 있다.
대안이 아니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경험의 공유가 작은 마을에 공동체를 이루어 갈 것이다.
그 속에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내 삶이 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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