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이 있다며, 띠뚜 님이 웃고 있다. 브이까지 하고 있다.



128명이 먹어치운 소금강 민물매운탕


드디어
강릉으로 간다고 전화가 왔다. 내게 이번에는 꼭 오라고 했다. 연초 방글라데시 독립기념일 행사에 초대 받았지만, 나는 가지 못했었다. 대신 캠프에는 수박을 사들고 가겠다고 진작에 약속했었다.

몇 명이 가시나요?
음... 128명입니다.
커억! 나는 128인분의 수박을 사들고 강릉으로 가야한다.


광화문에 수영장이 개장했다던, 우면산이 무너져내린 그 수해가 났던 다음날이었다. 에이구 하늘도 무심하시지... 강릉으로 간다는데 이 날씨는 뭐람... 전화로 비가 와서 어떡하냐는 걱정에, 띠뚜 님은 그냥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면되죠 뭐... 라고 답한다. 들어가지는 못해도 볼 수는 있게 바다의 구름이 물러가길, 강릉으로 가는 길 내내 바랬다.
 


               
     설악산 소금강의 어느 식당. 장담하건데, 개업 이후 이렇게 많은 외국인이 온 것은 처음일 거다.


 

그들을 만나기로 한 곳은 설악산 소금강의 한 식당이었다. 식당을 들어서는 순간,이주민을 만나는 일에 익숙한 편이었던 나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정말 식당 빽빽히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우와! 여기는 강원도가 아니라, 번잡한 다카의 어느 골목에 있는 식당이 아닐까? 이국적인 느낌에 마치 여행을 온 듯도 했으나, 테이블에 놓인 민물매운탕을 보고는 이내 여기는 강원도 산골임을 알 수 있었다.

복대를 차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띠뚜 님을 찾았다. 128명의 저녁을 먹이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그는 여기저기 크고작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밥술도 못 뜨고 있었다. 우리는 일을 못 도와주어서 미안했다. 다만 우리는손님이라는 핑계로 그를 간신히 밥상 앞에 앉힐 수는 있었다.

어떻게...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띠뚜 님이 말했다... -_-;

미꾸라지가 통째로 들어간 강원도식 민물매운탕을 앞에 두고 방글라데시 사람이 나에게 그런 인사치례를 한다... ^^;;; 아니다, 어쩌면 어떤 면에서는 그가 나보다 더 '한국적'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파주에서, 공장의 작업장에서, 다문화를 위한 활동의 현장에서는 말이다.  


        
    배가 고팠다. 신나게 곤드레나물과 매운탕을 먹고나니... 앗차! 음식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국물만 쓸쓸히 남아 있었다. 



완전 능력자. 슈퍼맨 띠뚜

사실 128명의 손님이 먹는 식사 치고는 아쉬웠다. 공기밥은 넉넉히 제공해 주었지만, 매운탕에는 물고기가 몇 토막 안 들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이주민이라고 음식주문과 소통의 과정에서 어려웠던 게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오는 길에 먹었던 점심이 시원치 않아서, 예약을 대행해준 여행사에게 의견을 전달하여 그나마 제대로 챙겨먹게 된 저녁이라고 했다.

한국이 편하고 익숙한 한국인들도 단체가 먹을 식당과 버스, 숙소를 예약하고 128명을 이끌고 강원도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닐 거다. 띠뚜 님이 고생하고 수고했을 게 뻔히 보여서, 마음이 짠했다.

오늘을 함께하는 128명의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 이런 띠뚜 님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무더운 여름에 변변한 휴가도 없이, 고향에 있을 가족들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이들은 띠뚜 님과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휴가 한 번 못가고 공장과 숙소에서 여름을 지냈을 지도 모른다. 공동체적이고 이타적인 공공재, 공익활동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도 아쉬워서 찾아 보았다. 인터넷을 뒤진 끝에 가장 비슷한 사진을 찾아냈다. 먹기 전의 원래 매운탕은 이거 비슷했었다. (출처: 경인일보 <[맛집을 찾아서] 김포 대곶면 대명리 OO매운탕>) 



간사님, 염소는 영수증이 안 돼요...

숙소는 식당에서 가까운
소금강 인근의 폐교를 개조한 수련원이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무슬림들이지만. 그래도 캠프 기분을 내며 먹을 간식들은 준비했냐고 물었더니, 과자와 음료, 라면 그리고 맥주 몇 병도 준비했단다. 아, 이번에는 조졸하게 준비하셨구나... 문득 작년 이맘 때 받았던 전화가 떠올랐다.

간사님... 저기 영수증 때문인데요... 주인이 영수증 끊어주는 게 안 된다고 ...
네? 그럴 리가요? 뭘 사셨는데요?
식비입니다. 농장에서 음식을 샀는데, 여기는 그런 거 안 된다고 하는데...
농장이요? 뭐 드셨길래요?
염소 두 개요...
아... 염소탕을 하는 식당에 가셨군요.
아니요... 염소 목장. 거기서 사서 저희가 요리해 먹었어요.
아... -.-;;;

돼지고기를 못 먹는 그들은, 고향에서처럼 양고기 요리를 해 먹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한국에 양이 어디 있던가. 비슷한 게 염소였구나. 같은 방글라데시 동료들끼리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염소를 잡고 요리를 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아마 나였다면 향수병에 그 요리를 못 먹었을 것 같다. 가족들 생각에 마냥 울었겠지...    

사실 이번에 캠프를 방문하면서, 그런 모습들을 잔뜩 기대했건만... 지원금을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띠뚜 님은 틀림없이 영수증이 발급될 대형 관광식당과 마트의 과자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WMA. 즉 Woori Migrant Association의 활동모습들. Woori는 바로 한국말 '우리'다. 

 



방글라데시 이주민의 친구 WMA

WMA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든 공동체다. 2001년에 만들어졌으며, 포천에 근거지를 두고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산재와 의료상담, 출국문제, 임금과 송금문제, 가정문제와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모여 해결하자는 취지로 생긴 WMA는, 그들이 말하는 그대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생활적 공동체다.


연간 1천 명 정도의 국내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이 WMA를 통해서 도움을 얻는다. 하지만 정작 일하는 임원은 3명에 불과하다. 슈퍼맨적인 능력과 열정으로 일하는 활동가 3인방에 의해, 점차 인권교육, 컴퓨터 교육, 노동법 관련 교육, 성희롱 예방교육, 음악치료 등의 활동과 캠프, 크리켓 대회 등의 공동체 친목강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 내 이주민의 숫자는 1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중 상당수가 중국 이주민이고, 등록된 방글라데시 이주민은 1만2천여 명, 하지만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한다면 2만여 명이 넘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들 이주민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 다문화의 가치와 감수성을 획득하는 것은, "글로벌 글로벌"을 병처럼 외쳐대고 있는 한국사회에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실이 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문화 감수성에 대한 널널한 오윤씨의 다른 포스트  
토마토수프, 멜팅팟, 샐러드볼 그리고 모자이크
http://bfchange.tistory.com/9
이주민의 다문화 인권과 책 http://bfchange.tistory.com/7


                               
               밥 먹다가 갑작스런 중대발표를 하는 아크믈 마수드(Akmlo Masud) 님, 그의 본명이다.



2주전 강제출국을 당한 WMA의 대표

식당을 일어서기 전,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띠두 님. 나는 불현듯 배신감이 들어서...
혹시 의리없이 먼저 결혼하는 거 아니냐고 따졌더니, 잠시 잊었던 외로움이 순간 떠올랐는지. 급우울한 표정으로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띠뚜 님과 싱글로서 모종의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차였다. 순간 욱했던 마음을 다스리며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었다.

마침내 한국 국적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WMA 일을 걱정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단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몇 주전 WMA의 대표였던 리키 님이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 되었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WMA에서는 활동의 안정성을 위해 강제출국의 위험이 없는 등록된 이주민을 중심으로 임원을 선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바뀐 새로운 임원진이 오늘 캠프에서 소개될 것이라고 했다.

띠뚜 님의 국적취득도 그 맥락 안에 있었다. 한국 사람도 다 모르는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불변의 영웅으로 선언해야 하는, 그 귀화시험을 통과해서 말이다.   


    왼쪽부터 두번째 띠뚜 님, 그는 WMA의 상근 실무자이다. 현 부회장 샤몰 님, 대표의 강제출국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WMA를 이끌고 있다. 다우드 님, 그는 WMA의 총무였는데, 내년부터 그는 이제 WMA의 대표가 되었다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의 든든한 공동체이자 친구인 WMA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의 활동가들이다. 지금이야 스스로도 훌륭하게 캠프와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WMA이지만, 초창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때 힘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 준 것이 서울외노센터이다. 

그리고 지금은 시민들이 돕고 있다. 그것도 아주 든든하게 돕고 있다. 작년부터 공익단체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이 WMA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 지원된 금액은 2천만 원이다. 늘 써먹는 계산법이지만, 1%기부자가 평균 1만 원을 기부한다면 올해 WMA를 지원한 시민 후원자의 숫자는 2천 명이 된다. 이보다 더 든든한 후원군이 또 있으랴.


           
     내 평생 이토록 많은 방글라데시 사람을 한 자리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300여 개의 눈들이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다. 말하는 나는 긴장긴장.

                 

깨몬아첸... 돈ㅎ노받, 아름다운재단입니다 

엄청 외웠다. 깨몬아첸... 돈ㅎ노받... 오늘만큼은 꼭 방글라데시 말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스마트폰 좋다는 게 뭔가, 함께 갔던 모금부서의 전영대 간사의 스마트폰은 강원도 설악산 골짜기에서도 잘 터졌다. 검색한 방글라데시 말을 열심히 외웠다.

깨몬아첸 (안녕하십니까?)...
와 하하하하.... 께몬아첸!
돈ㅎ노받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운 분위기 속에 인사말을 할 수 있었다. 인사말도 인사말이었지만, 캠프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을 처음 접하게 된 분들의 질문도 많았다. 비록 재주는 없었지만 어렵게 설명해 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보통의 시민들이 여러분을 도울 수 있도록 중간에서 일을 하는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재단이 흔히들 이주민을 돕는 다른 단체들과는 다른 모습이라 여겨졌는지, 많은 박수를 쳐주셨다.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전영대 간사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한국에 와주셔서 고맙다고, 한국을 위해서 일을 해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정말 엄청 큰 박수가 쏟아졌다. 이 당연한 말을, 그들은 이제서야 처음으로 들은 양 되려 고마워했다. 그래, 우리가 언제 그들의 노동에 감사한 마음을 기꺼이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얘네들, 쟤네들..." 심지어 이주민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조차 그렇게 부르곤 했지 않았던가... 일고의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도 않고 말이다.  


         
    새로 WMA의 대표를 맡게 될 다우드 님은 분명 '웃기는' 분이었다.
지루할 수 있는 안내시간을 시종일관 폭소와 청중들의 응답으로 구성하고 있었다.


 

대세는 무조건, 가끔은 카라와 소시

캠프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밤을 꼴딱 샐 것 같은 기세였다. 주로 WMA의 활동과 이주민들의 한국 내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설명이 이어졌는데... 간혹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물론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른다. WMA의 행사는 당연하게도 방글라데시 말로 진행된다. 다만 타이밍을 신경써서 웃을 때 같이 웃었다. 봐라. 그들이 웃는다! 그들이 웃는다! 무엇이 더 필요있나? 즐거운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웃음이 나온다. 이보다 더 즐거운게 또 무엇이 있겠나. 

하나 정도는 내가 알아듣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장면도 있었는데... 바로 간혹 터져 나오는 핸드폰 밸소리들이었다. 나는 방글라데시 아저씨들이 그토록 한국 트로트를 사랑하는지 몰랐다. 밸소리의 대세는 <무조건>이었다. 가끔 젊은 사람들의 중심으로 카라나 소시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 수박을 사느라고 힘들었다. 이왕이면 냉장보관 된 시원한 것들로 드리고 싶었다. 8통의 수박.

 

캠프 프로그램을 지켜보다 보니 시간은 자정이 다 되었다. 여기에서 함께 자고가면 좋겠다고 띠뚜 님은 말했지만, 아무래도 지원한 재단에서 눈치없이 껴드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했기에, 아쉽지만 그들과 인사를 해야했다. WMA의 활동가 뿐 아니라, 캠프를 참여한 다른 이주민들도 고마운 인사를 해 주셨다. 이렇게 첫 인사를 정겹게 해두었으니, 가을에 있을 크리켓 대회에서는 더 반겨주시겠지? 다음 방문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방글라데시의 이주민의 자존심 크리켓 대회

WMA는 같은 인디아 문화권인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의 이주민들과 함께 매년 크리켓 대회를 연다. 이들 네 국가들은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서로 약간의 경쟁심이 있는데, 이들이 한국에 모여서 어울린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띠뚜 님, 작년 크리켓 대회 몇등 했어요?
아니... 그게 대회는 서로 어울리고 화합하는 그런 식으로...
아니, 몇등 했냐니까요? 혹시 꼴등은 아니죠?
아니... 그게 대회는 서로 어울리고 화합하는 그런 식으로...

한국말을 한국 사람보다 잘하는 띠뚜 님이 내 질문을 못 알아들어서 동문서답할 리는 없다. 아마도 열성적이고 뛰어난 활동가들에 비해 방글라데시 팀의 전적은 썩 좋지는 않나 보다. 올해는 제대로 된 크리켓 장비들도 확보했다며, 맹연습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크리켓 대회. 조만간 이어질 크리켓 대회 방문기를 기대하시라... 고군분투 하는 방글라데시 크리켓 팀의 경기를 생생하게 중계해 드리리다. 

크리켓대회 취재기 http://bfchange.tistory.com/122

다문화 이주민 100만 공존시대, 이제 외국인 노동자를 한국인이 지원하는 형태를 떠나서, 그들 스스로가 공동체를 이루고 그들과 한국사회를 위한 활동들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들 공동체의 공익활동 성과들은 고스란히 한국사회로 돌아온다. 우리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일, 지금 그것을 WMA가 하고있다.




 

널널한 오윤씨 모금배분국임오윤 간사
공익단체와 그 활동을 지원하는 <변화의 시나리오> 배분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romaroo's 雜-log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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